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은 그의 벗 크리톤에게 남겼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한마리 빚 진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 주게"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의 신이다. 당시의 전통에서 치유를 기원할 때 혹인 치유가 되어 감사를 표할 때 제물을 바쳤다.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니체는 그의 유언을 남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삶은 하나의 커다란 질병이다. 그리고 죽음은 그로부터 벗어 나는 길, 즉 치유로 보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적인 생각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율법이나 도덕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이다."
덧 없는 이세상 너머에 세상이 있다는 즉, 사후의 삶이 있다는 이야기를 힘주어 말했다. 그 세상은 선한 행동을 한 이는 보상을 받고 잘못한 이는 벌을 받는 정의로운 곳이다.
진복팔단(眞福八端)은 감동적인 문장으로 사후에 주어지는 하늘의 정의를 말하고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 진리가 드러난다.
그 진리란 모든 것은 무상하며, 욕망을 지피는 이 무상함이 고통의 주요 원인이다. 불교 수행에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진리 탐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신에 대해서, 욕망에 대해서, 자기 안에 내재된 허상에 대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 수록 우리는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뒤, 부처님은 사성제(네가지 거룩한 진리)에 관한 설법을 하면서 교의의 핵심을 전한다.
다르마는 불변의 보편 이치를 가르키기도 하고 인간 조건의 실상과 만물의 궁극적 진리를 드러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리키기도 한다.
출가자는 두 개의 극단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두 개의 극단이란 무엇인가? 하나는 감각적 쾌락을 탐닉하는 것이다. 그것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세속적이며 열등한 것으로 악업을 낳는다. 다른 하나는 고행을 일삼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열등한 것으로 역시 악업을 낳는다. 출가자들이여, 이 두 극단에 빠지지 말라. 부처님은 중도를 깨쳐 식견을 갖추었고 그로 인해 적정, 중지, 등각, 열반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부처님은 진리를 아주 간단한 네 개의 문장으로 표현한다.
두카(dhukka)는 고통이라는 개념이다. 존재론적인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가리킨다. 부처님은 우리의 생이 두카라고 하였다. 두카의 근본원인은 갈애, 즉 욕망의 목마름이다. 이 두카를 없애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팔정도라고 한다. 여덟 가지의 올바름으로 이루어진 방법이다. 팔정도는 치유를 위하여 쓰인다. 불교는 치유를 위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팔정도는 이렇다.
인생은 고통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첫 번째 진단이다. 그에 따라서 고통을 일곱 가지로 나누는데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이 거기에 다 포함된다. 태어남도 고통이요, 늙음도 고통이요, 죽음도 고통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도 고통이요, 좋아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도 고통이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요, 다섯 장애인 오온도 고통이다. 결국 모든 것이 고통이다. 인생에서 영원한 행복을 구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주의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첫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고통의 원인이 갈애에 있다는 것이다. 갈애란 감각적 욕망과 생에 대한 집착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가리킨다. 부처님은 이어서 그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 방법이란 갈애로부터 고개를 돌려 그것을 단호히 끊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내게서 완전히 밀쳐 내는 것이다. 즉 갈애와의 완전한 단절이다. 이렇게 해서 그 것들이 더는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외계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판단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 결국 그것들을 부정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네 번째 진리는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는 길이다. 다시 말해 열반을 뜻한다. 팔정도로 풀이해보면 정견,정사유,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정(正)이라는 용어를 반복함으로써 붓다는 중도의 의미를 규정한다. 불교에서는 팔정도를 삼학으로 재분류한다. 삼학이란 계율을 실천하는 계, 마음을 사란하지 않게 하는 정(定), 미혹을 끊고 진리를 주시하는 혜(慧)를 일컫는다.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을 보자.
"나는 그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는 지극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깊은 깨달음이 일고 있으니, 이는 나의 마지막 생이요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중생을 정화하고 슬픔과 괴로움을 극복하며 정업을 얻어 열반을 실현하는 것은 단 하나의 길 밖에 없다. 바로 사념처이다. 이 명상법은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지적으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바쁜 일상 가운데 허(虛)를 만들어 내는 이완의 수단인 것도 아니다. 이 명상법은 깨어 있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즉, 안팎의 분란에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초연히 바라본다. 그리하여 피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고자 한다. 그것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세상 만물과 오온이 무상하는 것을 깨닫는 것, 아니 그보다 체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일컬어 바와나(bhavana)수행이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낳다' 혹은 '기르다'인데 궁극엔 해달에 이를 수 있도록 마음이 지어 내는 집착과 허상을 물리치면서 평정심을 길러 낸다는 말이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말한다.
"깨어 있되 활기차게, 따뜻하되 사려 깊게, 주의 하되 올바르게" 처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주의를 게을리 해서도 안되고 감각적 쾌락에 빠져서도 안된다. 게을리하지 않고 명상을 하면 지극한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늘 깨어 있고, 방일(放逸)을 저어하는 출가자는 결코 퇴보할 수 없다." => "방일을 저어하다" => 방탕한 생활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고집스럽고 제멋대로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사념처경에서는 마음 지킴을 수행하는 데 있어 주된 방편이 되는 네 가지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 대상은 몸, 감각, 마음 그리고 마음의 대상이다.
부처님은 무엇보다 호흡을 강조한다. 수행자는 호흡법을 잘 훈련하면서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고 자신의 몸에서 그 호흡이 일어나는 과정을 느낀다. 즉, 자신의 몸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수행자는 몸의 자세가 어떠한 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 그러고 나서 세번 째 단계로 넘어가는데, 자신을 직접적으로 둘러 싸고 있는 것들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것에 대해 맑은 이해를 얻게 된다. 최종적으로 수행자가 판단하게 되는 자신의 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부로 덮여 있는 것이며,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메스꺼운 것들로 채월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몸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송장과 다름 없고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게 아님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감각 또한 마찬가지로 주시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감각이 일어나는 과정을 안판으로 주시하여 알아차린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탐욕의 마음, 욕정의 마음, 혹미한 마음, 산란한 마음 등을 말한다.
수행자는 마음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과정을 가만히 주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세상의 그 뭇에도 얽매이는 바 없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마음의 대상을 주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감각적 욕망, 악의 아집, 회한, 의심과 같은 오온과 색, 성, 향, 미, 촉 등이다. 결론적으로 수행자는 네 개의 거룩한 진리, 사성제를 깨달아야 한다. 저마다의 근기와 서원에 따라 이 수행 과정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아니면 몇 번의 윤회가 필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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